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  1. 서글픈 현실 (14) 2010/03/23

서글픈 현실

from 소소한 일상 2010/03/23 17:12


야근 가능. 철야 가능. 주말 출근 가능. 해외 근무 가능.

대졸 실업자가 40만 명을 넘어섰다는 요즘. 몇 년 째 직장인으로 살고 있는 내가 피부로 느끼기는 힘든 수치였다. 그런데 우리 회사에 지원한 신입사원 이력서에 적힌 이 몇줄에서 '취업대란'이라는 현실의 서글픔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. 야근에 철야에 주말 출근에, 취업만 한다면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인가. 도대체 그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면 '내 삶'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건지...

이런 현실이 서글프다고 느끼고 지나칠 수 있었던 일로 포스팅까지 하게 된 건, 조금 전 일어난 사건(?) 때문이다. 회의실에서 만수님과 청국장님, 그리고 나 셋이서 과자를 먹으며(!) 회의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회의실 밖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. 청국장님이 깜짝 놀라 나가보니 왠 정장을 입은 청년이 서 있었다. 국장님과의 대화를 들어보니, 이 청년은 우리 회사에 입사지원한 청년. 내일이 면접일이라고 공지되어 있는데, 본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. 1차 서류전형에서 탈락한 것 같은데,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력서로 확실히 보여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는 거다. 부랴부랴 자리를 정리하고(회의했는데, 갑작스러운 방문에 괜히 민망하네) 회의실에서 잠시 기다리라고 한 후 두 분이 면접 준비를 하시는데, 이 청년의 이력서는 출력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. 부랴부랴 이력서를 출력해서 들어가신 후 지금까지 30분째 면접 중이시다.

일단, 연락도 받지 않고 이렇게 찾아온 청년의 용기(?)가 놀랍고 대단하게 느껴지면서도 서글펐다. 저 청년은 정말 우리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걸까? 이렇게 일하고 싶어서 찾아올만큼 우리 회사에 대해서,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까? 아니면 단지 취업이 하고 싶은 걸까? 그렇다면 혹 합격이 된 후 우리 회사에 출근하는데, 조금 더 크고 좋은 곳에서 연락이 올 경우 냉큼 그곳으로 가지는 않을까?

정말 함께 일하고 싶어서 찾아왔을지 모를 순수한 마음을 의심하게 되는 건 내가 순수하지 못한 탓인지, 실업자 40만이라는 현실 탓인지 모르겠다. 그저 야근과 철야, 주말 출근까지도 감내하며 취업을 희망하는 청춘, 본인에게 호감을 표하지 않은 회사에까지 찾아오는 청춘의 용기가 안타깝다. 이 시대가 서글프다.



- 방금 면접을 끝내고 청년이 돌아간 후, 두 분이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 한 마디.
   "역시, 보는 눈은 틀리지 않아"
  이봐 청년, 당신을 환영하고 필요로하는 곳에서 기분 좋게 일하길 바라!


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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